오래 고생하시던 외할머니 임종 소식을 접하고 부랴부랴 짐을 챙기던 엄마가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빠 살아생전 두 분이 함께 본당 연령회를 하시며 수많은 죽음을 접했지만 역시 사랑하는 가족의 임종은 그 아무리 호상이라 해도 마음에 위로가 많이 필요한 듯합니다.
빈소가 마련된 아침, 엄마 고향 본당의 연령회장님이 제일 먼저 오셨습니다. 입관과 발인, 장례미사 일정을 상의하셨고 연령회 깃발과 연도 책을 비치해 놓으셨는데, 말씀을 나누다 보니 엄마의 학교 후배, 둘째 이모와는 동창이셨습니다. 가족들은 회장님을 더 신뢰하며 경험에서 우러나는 조언에 감사했습니다. 이어 본당 연령회원 분들이 도착하셨고 노래로 바치는 긴 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연도 책에 나와 있는 악보를 따라 읽다 보면 구전 가요 같은 구슬픈 가락으로 시편들과 성인호칭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반주도 화음도 넣지 않고 부르는 것이 꼭 그레고리오 성가와 비슷한데, 그 멜로디는 한국 사람이면 누구라도 마음이 동할 구성진 우리 가락입니다. 그런데 이를 다 바치면 40분은 족히 걸립니다. 성인호칭기도를 빼고 짧게 바쳐도 약 20분은 걸리는 노래기도지요. 그냥 읽어 내려가면 그 1/3도 안 걸릴 텐데 이렇게 노래로 하면 정말이지 ‘큰 맘 먹고 바쳐야 하는 기도’가 됩니다.
그런 기도를 하루에도 여러 번 바쳐 주시러 연령회 회원들이 오십니다. 문상객 중 혼자 또는 서넛이 오셔서 그 시작을 주저할 때도 동력이 되어 주셨죠. 서로 주고받는 이 노래 기도는 함께 바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힘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매번 느끼지만, 소위 잘 나가는 성악가이고 악보도 잘 보는 제가 하면 왠지 그 맛(?!)이 안 나고 영 어색한데, 어르신들은 어쩌면 그리 흔들흔들 리듬을 타시며, 긴 날숨으로 하소연하듯, 간절하게 목청 돋우어 맛깔나는 기도가 되게 하시는지요!
이내 빈소는 기도하는 집이 되었습니다. 처량한 상주의 곡소리 대신 우리 가락으로 그 슬픔을 대변하고 하늘로의 구원을 청하는 기도가 가득 찬 성스런 곳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장시간 자리를 지켜 주시는 든든한 분들의 구슬프지만 우렁찬 기도 속에 상주를 비롯한 가족들은 조문하러, 위로하러 와 주신 문상객들을 여유 있게 맞고, 그 위로를 받고, 충분한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신자가 아닌 문상객들 또한 자신의 방식으로 고인의 명복을 더 정성껏 빌어 주시더라고요.
‘연도’가 외국어로는 뭘까, 유럽 가톨릭에서는 어떤 기도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더군요.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장례미사’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는 우리만의 고유한 기도였습니다. 박해시대 때 사제가 없어 장례미사를 드릴 수 없었던 선조들이 조상 제사가 금지된 상황에서 ‘민족의 장례풍습에 입각한 평신도 중심의 장례 예절서’로 탄생시킨 것이 ‘연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연옥에 있을 영혼들을 위한 기도라는 뜻의 이 말이 적절치 않다고 보아 지금은 ‘위령기도’로 바꿔 부른다고 합니다.
아, 이렇게 멋질 수가요! 천주공경가처럼 교리나 기도를 일찍이 우리말로 풀어 노래로 만들어 불렀던 우리 선조들의 이러한 능동적인 신앙의 실천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 자랑스런 한국교회만의 유산을 외국 친구들에게도 알리고 자랑하고 싶어졌습니다. K-가톨릭, K-prayer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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