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장례의 올바른 이해(3)

by 블루스카이 posted Dec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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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진 시몬 서울대교구 연령회 연합회 상장례 강사

1. 장례의 시편
위령기도의 중심은 시편입니다. 우리는 계속 죄를 저지르고 배반하는데도 하느님은 늘 사랑으로 용서하고 안아주십니다. 따라서 이 세상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우리가 하느님께 간구해야 할 바를 잘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시편 제62(63)편 악보의 ‘구성지게’를 ‘구슬프다·서글프다·청승맞다’로 이해하는 이가 있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불행한 끝이 아니라 새롭고 영원한 생명으로 주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한 시작입니다. 따라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 안에서 본래 의미대로 ‘천연스럽고 구수하며 멋지게’ 불러야 합니다.
시편 제62(63)편은 다윗이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궁전을 떠났을 때 바친 기도입니다. 그는 아들과 싸워야 하는 아비로서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사정을 하느님께 하소연하고 어려움에서 건져 주시기를 간절히 바랐고, 주님은 난관에 빠진 다윗을 변함없이 건져 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있다면 어떤 위기도 극복하고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이라는 절망과 고통을 부활의 희망과 기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니 늘 용서하고 구원하시는 하느님만 믿고 찬미해야 합니다.
시편 제129(130)편은 주님의 자비와 은총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위령기도의 중심 부분입니다. 주님께 죄의 용서를 빌고 그분 자비를 바랄 수 있는 것은 분명한 믿음과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므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지만, 하느님은 늘 용서해주십니다. 주님의 은총이 당장 베풀어지지 않는다고 느끼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주실 것이니 죄악과 곤경에서 절망하지 말고 자기 죄를 참회하며 그분의 용서와 사랑을 기다려야 합니다.
시편 제50(51)편은 자기 죄에 대한 참회를 가장 절절하게 나타내는 대표적인 시편이어서 교회는 장례뿐 아니라 참회 예식에서도 바쳤습니다. 이 시편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 11-32)에서 돌아온 아들을 무조건 받아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불러일으킵니다. 비록 우리가 몇 번이고 깊은 죄에 떨어졌을지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 하느님께서는 멀어졌던 당신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십니다.

 

2. 성인 호칭기도
성인호칭기도는 눈먼 사람(마태 9, 27 참조), 귀신 들린 딸의 어머니(마태 15, 22 참조) 등 가난하고 힘없는 이가 예수님께 치유를 간청하는 자비송인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Κυριε Ελέῃσον, Kyrie Eleison)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성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 삼위일체이신 주님의 자비를 바라며 간절한 청원을 들어 주시기를 빕니다. 이어 성모 마리아, 천사, 성인들에게 죽은 이의 구령을 위한 전구(轉求)를 요청하고 나서 다시 주님의 자비를 간구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의 생성과 변화를 잘못 가르치는 이가 있습니다. “성인호칭기도에서 무교(巫敎)의 사령(死靈) 신앙적 사고를 찾아볼 수 있다.”라고 하거나 “연도 문화는 한국의 전통문화인 효 정신의 습합(習合), 무교의 사령 신앙적 사고, 공동체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주장합니다. 성인들에게 전구를 요청하는 것을 무당이 본격적인 굿을 벌이기 전에 신들을 부르는 것과 같은 것처럼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3세기에 동방교회에서 발견되며, 5세기에 서방교회에 전해졌고, 8~9세기가 되면 온 유럽으로 퍼졌습니다. 1570년까지 교황청으로부터 허락받고 성인의 이름을 넣거나 뺄 수 있었으나, 비오 5세의 ‘미사 경본’부터는 획일적으로 고정되었습니다. 라틴어로 된 이 기도문을 중국교회가 한문으로 번역하고, 조선교회가 한글로 바꾸었을 뿐 달라진 내용이 없었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우상을 숭배하거나 미신에 빠지지 않으려고 늘 조심했습니다. 굿판을 벌여서도 안 되고, 구경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보고 듣지 않으려고 피해 멀리 돌아간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3. 찬미와 간구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면서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모든 성인의 전구를 통해 선종한 이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생전에 지은 모든 죄를 사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이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받게 하시려고 받으신 다섯 상처, 십자가, 성심 등으로 선종한 이가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도록 간구합니다. 또한 세상의 빛, 어진 목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선종한 이를 부활시켜 주시기를 탄원하고, 성모님께도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해 전구해 주시어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간청하면서 위령기도를 마무리합니다.

 

4. 그리스도인의 수의와 상복
장례에서 유족은 삼베 상복을 입고, 시신에는 삼베 수의를 입히는 것을 전통이라고 오해하는 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상복과 수의는 유교의 상례에서 비롯된 것인데 상복을 입고 수의를 입히는 이유는 다릅니다. 유교에서 죽음은 가장 불행한 사건이므로 부모나 조부모의 죽음을 막아야 하지만 이를 못 막은 자녀나 후손은 가장 큰 불효를 범했으므로 죄인의 의미를 드러내려고 거친 삼베로 지은 상복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의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유교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효도인데 마지막 길을 떠나는 분께 지금은 비싸고 귀하지만 지난날에는 싸고 흔했던 삼베를 전통 수의로 잘못 알고 입히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유교 예서인 ‘주자가례’, ‘상례비요’, ‘사례편람’ 등에 특별히 수의를 지으라는 규정이 없습니다. 조선 중기 이전 무덤에서 살아있을 때의 옷을 입힌 시신이 발굴되고, 그 이후는 평소에 입던 옷과 함께 비단[緞]‧무명[木棉]‧모시[苧]‧삼베[麻] 등으로 지은 다양한 수의가 나타납니다. 삼베 수의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었는데, 전쟁을 중심으로 산업 체계를 바꾸었기 때문에 고급 천이 귀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삼[麻]과 베틀만 있으면 짤 수 있는 삼베로 수의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이를 오랜 전통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기계로 짠 옷감보다 손으로 짠 삼베가 비싸고, 그 삼베로 지은 수의는 더 비쌉니다.
“민족들의 풍습에서 미신이나 오류와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든 호의로 존중하고…”(전례 헌장, 37)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열린 자세를 본받으면서도 교회의 주요 가르침에서 벗어나면 안 될 것입니다.
“문) 비단 등 보배로운 옷으로 시체를 입힘이 어떠하뇨? 답) 옷을 입힘은 각 사람이 처지대로 할 것이로되 체면만 돌아보아 분수에 지나면 헛되이 씀과 교오(驕傲)를 부리는 두 가지 죄를 면하기 어려우니 가히 삼가지 아니하랴?”(텬쥬셩교례규)라고 가르쳤습니다.

선종한 이가 평소에 입던 옷 중에 좋은 것을 입혀 주님께 보내드리고, 상복은 형편을 따라 정하되 가능한 한 비용을 아껴 장례를 마친 뒤에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었던 선조들의 참된 신앙생활을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9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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